환상을 그려내는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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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된 디자이너 이상봉과 김연아. 지난 열흘간 디자이너 이상봉의 숍에서 이번 ‘페스타 온 아이스’ 공연 의상 피팅을 보게 된 김연아를 만나기 위해 수없이 바뀌는 스케줄에 화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그녀가 성수대교를 건너고 있다는 담당자의 말에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술렁였다. 그것이 바로 ‘김연아 파워’다.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 그래서 그녀를 실제로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은 물론, 현장에 함께한 이들조차 이를 특권이라 생각했다. 그녀가 도착해 숍을 들어서는 순간 그녀가 디디고 있는 땅이 얼음으로 변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모두를 얼음처럼 얼어버리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바쁜 일정 탓인지 막 도착한 그녀의 모습은 약간은 피곤한 모습이었다. 허나 이내 순서대로 진행되는 피팅 과정에서 그녀는 미소를 짓기도 하고,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기도 하다가, 조심스레 선택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기억하는가? 영국 유로 스포츠의 한 해설가는 올림픽 중계 해설 중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Pressure? What pressure? Pressure is her privilege.”(부담감요? 무슨 소리? 부담감은 그녀의 특권이지요)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차고 넘치는 관심과 사랑 속에서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숙녀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월드 챔피언’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을 잘 감당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이 정도 유명세를 치렀으면 안티 팬들이 좀 있을 법도 한데 그녀에게 안티 팬이 있다는 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걸 보면 안티 팬들 역시 김연아의 솔직함과 겸손함에는 무릎을 꿇은 것이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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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김연아는 피팅중 종종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른쪽) 플랫 슈즈를 신어도 모델 못지않는 황금 비율을 보여주는 김연아. 디자이너 이상봉이 “지난번 선물로 준 옷 잘 입고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멋쩍게 미소 지으며 “운동복만 입느라 입을 새가 없었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냥 ‘잘 입고 있다’며 넘어가도 될 것을. 그녀는 그만큼 아직도 정직하고 순수한 스무 살 숙녀인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약간은 짓궂은 질문을 하고 싶어 말을 건넸다. “이제 숙녀가 됐으니 남자친구를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은가? 이상형을 남자 피겨 선수에 비유한다면 이반 라이사첵 스타일이 좋은지 아니면 스테판 랑비엘? 조니 위어? 마이클 첸?” 그러나 이번 피팅 과정은 그녀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배려해 최소한의 질문만 허락된 시간이었기에 카메라 셔터 소리만 쉴 새 없이 침묵을 메울 뿐이었다. 간간히 던진 나의 질문은 관계자들에 의해 저지됐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곤란하지만 미안한’ 눈인사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대인배 김슨생’이라는 별명처럼 어리지만 여왕 같은 그녀의 자비로운 눈 대답은 1백 가지 이상의 대답을 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지난해에 이어 벌써 두 번째로 김연아의 ‘페스타 온 아이스’ 공연 의상을 디자인하게 된 이상봉 또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한•러 수교 20주년 문화 축제를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대대적인 쇼를 마치고 얼마 전 귀국한 그는 피팅이 이뤄진 바로 다음날 쿠웨이트 개인 스토어 오픈을 앞두고 있으며, 곧 튀니지로 움직여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고객은 비단 한국에만 있지 않다. 그의 옷을 사랑하는 이들은 전 세계에 있다. 세계적인 팝스타 리한나와 레이디 가가의 스타일리스트들이 그의 옷을 공수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니 말이다. 그런 그와 김연아의 인연은 어쩌면 필연인 것처럼 보인다. 올림픽 시즌 전 김연아의 갈라에 쓰인 곡이 리한나의 ‘돈 스톱 더 뮤직’이었으며, 미국 CNN 인터뷰에서 김연아가 레이디 가가의 신곡 ‘파파라치’가 최근 가장 즐겨 듣는 팝음악이라고 말한 것만 보더라도 이상봉과 이 재능 넘치는 세계적인 세 여인의 상관관계를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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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위) 예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활짝 웃는 모습. (오른쪽) 움직임이 편한지 한바퀴 돌아보고 있다. (왼쪽아래) 드레스 길이에 대해 논의 중인 두 사람. 조금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첫 번째 피팅이 시작됐다. 그녀를 포함해 남자 싱글 선수와 다른 선수들이 함께 입게 될 한글 프린트 셔츠. 김연아를 위해 준비된 셔츠는 컬러감이 가장 돋보이는, 누가 봐도 메인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이를 입고 온 데님 팬츠와 레드 티셔츠 위에 걸쳐보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소매를 쓱쓱 걷어올리곤 거울을 보며 미소짓는다. 그녀가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틈을 타 이상봉에게 모델, 연예인들과 작업할 때와 어떻게 다른지 묻자 “국민 영웅인 만큼 느낌이 많이 다르죠. 김연아 선수는 정말 이상적인 프로포션을 갖고 있어요. 황금 비율의 몸이죠.”라고 답한다. 이어진 본격적인 드레스 피팅. 2부 첫 곡 오프닝 공연에 입게 될 의상을 고르기 위한 피팅이 시작됐다. 이상봉의 2010 S/S 컬렉션에서 볼 수 있었던 독특한 프린트가 더해진 블랙 드레스. 몸 뒤쪽에 마치 배트맨의 망토를 연상시키는 케이프가 달린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선 김연아에게 또 한바탕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진다. 이제는 아예 그런 상황이 익숙해진 듯 몇 가지 포즈를 취해주고 점프 도약 전 팔 동작이 용이한지, 움직임에 불편함은 없는지 스스로 움직이며 거울을 바라본다. “이 드레스의 테마는 ‘지구를 지켜라’야. 여전사의 이미지를 담았지”라는 이상봉의 이야기. 웃음으로 화답하며 그녀는 자신의 스태프들과 눈으로 상의를 했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영민하게 예스 혹은 노를 전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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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 켤레의 하이힐처럼, 그녀의 룩을 완벽하고 또 아름답게 완성하는 스케이트. 이어진 ‘타이스 명상곡’의 의상 피팅. ‘발레 동작이 많은 갈라 곡이기에 몸이 더 드러나야 좋지 않겠냐?’는 그녀의 코멘트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준비된 의상은 총 세 벌. 레이스업 프린트가 돋보인 핑크 드레스와 ‘트롬프 로뢰이으’ 러플 프린트가 포인트인 버건디 드레스, 그리고 한글 프린트가 더해진 블랙 앤 화이트 드레스가 그 주인공이다. 4세기 이집트를 배경으로 신의 사랑을 알리려는 수도승 아다나엘과 사랑의 신 에로스에 휩싸인 무희 타이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표현한 ‘타이스 명상곡’ 공연을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자신을 지지한 이 세상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의미를 담아 선보였다. 특히 올림픽 시즌 그녀의 이 갈라 의상이 전설의 스케이터, 카티아 고르디바가 파트너 세르게이 그린코프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100일 추모 공연을 했을 때 입었던 연회색에 그러데이션 염색이 돼있는 의상과 비슷한 오마주 의상이었음을 골수 피겨 팬이라면 아마 눈치챘을 것이다. 이번에 그것을 뛰어넘는 의상이 디자이너 이상봉의 손에 달려 있는 순간이기에 피팅 중 토론은 사뭇 더 진지했다. 김연아가 선보인 전설적인 선배 스케이터들에 대한 오마주 의상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지난해 월드 챔피언에 올랐을 때 입었던 붉은 의상이 바로 그녀의 멘토 스케이터 미셸 콴이 오래전 공연했던 같은 프로그램 ‘세헤라 자데’에 대한 오마주였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2010년 올림픽 금메달을 그녀에게 안겨준 롱 프로그램 ‘조지 거신’은 그 누구의 오마주도 아닌 바로 김연아 자신의 이야기였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 바로 ‘김연아’ 자신을 이야기하는 롱 프로그램의 블루 홀터넥 미니드레스는 모든 시련을 아무렇지도 않게 물 흘러가듯 낙천적으로 이겨낸 그녀의 강단이 유연하게, 허나 절제돼 표현됐고 모든 경기가 끝난 후 아주 깊은 곳에서 터져나온 그녀의 흐느낌은 전 세계 피겨 팬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수 백 번의 플래시가 터지고, 그녀는 입고 왔던 후드 티셔츠와 데님 팬츠의 수수한 차림으로 공손히 모든 이들의 인사에 고개로 답하며 숍을 떠났다. 그녀가 떠난 후 자리에 모인 이들은 ‘환상’ 같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피팅이 이뤄진 한 시간 반의 시간이 말이다. 그녀가 어떤 드레스를 선택했는지는 ‘페스타 온 아이스 쇼’가 열리는 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마리 새처럼 빙상 위에서 피어오를 그녀의 ‘춤’은 다시 모든 이들을 몽환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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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의상을 입어볼 때마다 자신의 스태프들에게 눈으로 의사 전달을 하는 모습. (오른쪽) 언제나 김연아와 함께하는, 분신과도 같은 스케이트. 그녀가 오랜 꿈을 이룬 지 이제 겨우 석 달이 지났건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 스무 살의 어리디 어린 숙녀에게 앞으로 어찌할 건지를 대답하라고 종용한다. 무슨 맡겨놓은 보따리라도 내놓으라는 듯 말이다. 우리가 스무 살이었을 때 인생을 어떻게 살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가? 그녀가 다시 얼음판에 나설 지는 그녀만의 문제다. 그녀가 열정으로 가득 차 다시 우리에게 그토록 경이로운 트리플 루츠, 트리플 토룹 연속 점프로 나비처럼 날아오를지는 그녀만이 결정할 개인사다. ‘여나바우어(실제로는 ‘이나바우어’이지만, 그녀의 팬들이 그녀 이름으로 붙여 부르는 기술)’에 이은 더블 엑셀 더블 룹, 더블 토가 조지 거신의 음표처럼 튀어오르는 것을 더 이상 못본다 해도 섭섭해 하지는 말지어다. 지붕을 뚫고 나갈 것만 같았던 스프레드 이글 다음에 붙는 더블 악셀과 연이은 엄청난 트리플 토룹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만날 수 없을지라도 우리 가슴속에는 그녀가 이미 선사한 너무나 근사한 감동이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는 이제 올림픽 챔피언뿐 아니라 피겨 역사상 올림픽에서 쇼트와 롱 프로그램을 클린으로 마무리한 또 한 명의 전설이다. 크리스티 야마구치, 카타리나 비트, 미셸 콴에 이어 그녀의 이름이 피겨의 명예의 전당 계보를 이으며 빛나게 됐고, 그런 그녀가 바로 코앞에서 의상을 피팅하고 있는 모습은 그래서 매우 초현실적이기만 했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스케이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15세 소녀 김연아는 이제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퀸 유나(Queen Yuna)이며 우리 모두의 페이버릿 스케이터(Favorite Skater)다. 그녀와 그녀가 지배하는 수 천 톤의 얼음판이 영원히 녹지 않기를 기원한다. *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5월호를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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